즐겨찾기 추가
11.16(금) 22:26
아침신문
인터뷰
우먼파워
기획·특집
핫이슈
독자마당
시사칼럼
건강칼럼
기자수첩

[기고문]국가는 왜 ‘벼랑 끝 자이니치리더’ 청암대 K 전 총장을 외면하고 있는가?

- 청와대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재일교포에게 무엇을 도와주었는지?
- 전 재일교포 사회에서 K총장에 대한 조국의 이미지 재조명하여 살펴볼 때
- 조국에 대해 회의감을 느껴 만약 그들이 일본으로 귀화한다면 국가는 무어라 변명할까?
2018. 03.19(월) 08:05확대축소

[순천/아침신문]이문석기자 = 청암대 전 K총장 가족들은 대한민국 국가는 왜 ‘벼랑 끝 자이니치리더’를 외면하고 있는가? 라고 묻지않고 침묵하는 모습에 다소 의아해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과거 회사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 니이가타현에 있는 쯔가미라는 회사에서 기술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고, 당시 그들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이야기의 포인트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인의 차이를 비교하여 말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하나의 회사 건물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의 이야기이다. 이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선 회사건물에 따른 경비 근무를 하고 있는 일본인의 경우 회사대표이자 건물주인이 매일 아침 출근하면 경비원의 마음은 한결같이 이 주인이 잘되어야만 자신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이 회사가 잘꾸려나갈수 있어야 자신도 오랜기간 근무할 수 있고 더불어 이후에도 자식들도 함께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인 경비원은 이와 달리 어떻게 하면 회사 건물을 자기것으로 만들고 자신이 대표로 일할 수 있을 것인지 그의 머리 속에는 항상 늘 뒷북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여 당시 기술연수를 통해 습득하려는 보유기술 확보에 내 스스로가 다시한 번 생각해 보았다.   

우선 청암대학교는 재일 오사카 거점으로 민족운동에 헌신한 재일동포 1세대 ‘강씨 삼형제’ 중 고 강길태(前 강명운 총장의 부친) 한 사람이 조국을 위해 고민하던 중 재일동포 최초로 대한민국에 설립한 전문대학이며, 나아가 지역에 사학교육 발전을 위해 입안한 브레인이다.

그리고 청암대 개교 후 고 강길태 이사장은 아흔 세 살 때까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옛일을 정확하게 기억해 낼 만큼 정신이 건강하여 노환으로 별세하기 직전까지 현역으로 대학업무를 살필 만큼 총기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특히 고 강길태 이사장이 우리 지역에 대학을 세우려고 작심한 근저에는 본인이 유소년기 일제식민지 시대 초근목피로 연명하다보니 공부는 사치품으로 무학이 부지기수일 수밖에 없던 시대 상황으로 제대로 배우지 못한 면학에 대한 굶주림의 영향으로 ‘배움에 한’을 풀고 싶어서였던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1973년 귀국하여 막내 동생 강길만 씨가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사람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지역민원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그 중 순천주민들의 불만 중에 하나가 직업고등학교가 없다고 말하여 순천에 있는 은행, 기업, 관청에 있는 직원을 살펴보니 여수 혹은 보성 출신이 많아 이후 76년7월 순천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게 됐다.

이후 육영도전은 1980년대 초반 순천교육감이었던 송승록 씨가 찾아와 ‘순천간호전문대학을 맡아줄 수는 없겠습니까?’라고 느닷없는 대학인수 제안에 거절하자 계속해서 찾아와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해마다 적자액이 수억 원에 달해 재정난을 겪고 폐교 소문까지 돌았을 만큼 심각한 지경으로 결국 파산하는 것만큼은 막으려고 수십 년간 일본에서 고생하며 모은 돈과 그동안 알음알음 사뒀던 전답을 죄다 팔고 인수하고 나니 간판만 대학이지 대학이라 부르기 민망한 교육환경으로 새로 만든다는 각오로 대학정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후에도 있는 없는 돈 탈탈 털어서 대학건물을 신축했고, 나아가 지성인이 온전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대학기자재도 첨단기기로 교체하면서 일본에서 각종 유명 브랜드의 컴퓨터, 복사기 등을 주문해 전남 관내 대학 가운데 최신형 기자재를 갖추었다.

물론 그가 당시 인수할 때만 해도 간호과 학생 240명에 불과한 작은 전문대학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후 몇 차례 업그레이드하면서 1998년 순천청암대학 당시 재학생 3,500명이 다니는 중견대학으로 발전됐다.

또한 그 이후 2011년4월 고 강길태 이사장의 유지를 이은 장남 강명운 씨가 제4대 총장으로 취임한 후 6개학과가 개설되었고, 그리고 대학 분교가 전남 여수와 구례 그리고 경남 사천 3군데가 있었다.

특히 종전의 K총장은 고 강길태 총장이 항상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잘살아야만 타향에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하여 K총장은 타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맨주먹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씀씀이를 아끼고 돈을 모아 고물상, 철공소, 오락실 등으로 재력을 키워 부친이 있는 이곳 조국과 순천을 위해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다 가져왔다고 당시 최종 변론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여 주위로부터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 K총장은 약 40억 원 정도의 금수문고를 학교에 유치하였는데 본인이 무엇 때문에 국내에 있는 돈을 다시 국외로 유출하겠느냐며 강력하게 울분을 토로하며 항변하는 모습에 당시 참여했던 교직원과 관계된 방청객까지도 모두가 숙연해 졌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K 전 총장의 가족과 지역민 대다수는 누구보다도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반해 조국은 과거 어려울 당시 재일교포로부터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이용하고는 이제 잘살고 있기에 재일교포에게 홀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문석 jlms1024@hanmail.net        이문석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순천소방서, 공동주택 소방자동차 전용구역 확보로 우리의 안전 확보
담양 경관농업관광 활성화에 대해서
집회의 새로운 변화 “대화경찰관”을 소개합니다.
[기고문]무안경찰서장, 내가 허락하지 않는 불편한 시선, 불법촬영을 근절하자!
[기고]정겨운 전통시장 작은 관심으로 화재를 예방하자
봄철 산악 안전사고에 대해서
[기고문]하루아침에 강제추행 가해자로 낙인찍힌 굴레 벗어나길
[기고문]서해수호의 물결
【기고문】송창훈 여수해경서장, 해양오염 예방을 위한 윤활유 용기 실명 관리제 도입…
[기고문]국가는 왜 ‘벼랑 끝 자이니치리더’ 청암대 K 전 총장을 외면하고 있는가?
새 학기 학교폭력, 관심이 필요합니다.
[기고문]생활 속 작은 관심이 외양간을 지켜줍니다